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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야구

최동원 롯데자이언츠 레전드 투수!

by 자신감 2023.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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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동원 그는 누구인가?

최고구속 155 km/h의 강속구와 강한 어깨로 아마야구 시절부터 '철완', '무쇠팔'로 불렸다.

1981년 실업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해서 실업 롯데 자이언츠를 1981년 실업리그 전기리그 우승,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고 신인왕, 다승왕, MVP를 수상하였다. 

1981년 캐나다 에드먼튼에서 열린 인터콘티넨털컵 대회에서 최우수투수상을 받고 메이저 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팀과 메이저 리그 25인 로스터에서 시작하는 조항이 포함된 5년(1981년-1985년) 메이저 리그 계약을 체결하였다.(1981년 9월 15일 계약체결, 1981년 9월 28일 메이저 리그 사무국 계약승인)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메이저 리그 진출 대신 새로 출범한 한국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에 1983년 입단하였다.

프로 입단 후 기록은 밑에서 자세히 알아보자.

한화 이글스의 투수 코치 및 2군 감독, KBO 경기감독위원 등을 역임했으나, 2011년 9월 14일 호전되었던 대장암이 악화되면서 54세로 세상을 떠났다.

 

최동원이 칭송받는이유

1. 불굴의 투지와 대단한 배짱을 보여줬다. 승리에 대한 집념이 남달랐고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배짱도 보통이 아니었다. 늘 거만하게 보일 정도로 당당한 표정과 제스처로 일관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고인은 언론을 통해 "아프지 않다. 곧 돌아가 내 할 일을 하겠다"고 말한 것도 병마와 싸워 이기겠다는 투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 철두철미한 '에이스 정신'이 돋보였다.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5경기에 등판한 것은 고인이 스스로 자원한 것이다. 그의 지칠줄 모르는 체력이 뒷받침됐지만 에이스로서 팀을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없었다면 결코 이룰 수 없었던 결과다.

3. 연투 능력이다. 고인은 무쇠팔이라 불릴 정도로 연투 능력을 뽐냈다. 체력하나 만큼은 선동열도 비교대상이 아니었다. 현역시절 최동원과 라이벌 구도를 이뤘던 넥센 김시진 감독은 "1984년에 최동원은 선발 뿐 아니라 이기고 있는 경기에서는 4회나 5회부터 나와 승리를 챙겼고, 그렇게 27승을 기록했다.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대단한 체력이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한국시리즈 5경기 등판도 강철 체력 없이는 불가능했다.

4. 고인을 최고 반열에 올려놓은 파워 커브다. 엄청난 각도로 떨어지는 최동원표 커브는 선동열의 슬라이더와 더불어 아직까지도 국내 최고의 구종 중 하나로 꼽힌다. 고인의 커브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려주는 일화 하나. 실업야구 시절, 고인은 대전중학교에서 훈련한 적이 있는데, 당시 중학교 3학년 포수가 공을 받았다. 고인은 포수에게 "절대로 일어서지 말고 앉아서 공을 받으라"고 당부하고 커브를 던졌다. 그러나 이 포수는 자꾸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인의 손끝을 떠난 공이 처음에는 너무 높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은 홈플레이트 앞에서 뚝 떨어졌고 포수는 공을 받는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폭포수 커브'라는 말도 고인에 의해 생겨난 것이었다.

 

 

2. 최동원의 플레이 스타일

150 ~155km/h의 강속구에 100~130 km/h의 다양한 속도의 가감을 줄 수 있는 파워커브, 낙차 큰 커브(주로 폭포수 커브)가 대표 구종이었다. 

슬라이더가 3번째로 자주 던지는 공이었다(이순철 야구해설위원의 증언에 의하면 그의 슬라이더는 현재로 치면 사실상 슬러브에 더 가까운 볼이라고 한다.). 역회전볼(스크류볼), 슈트(투심성 싱커) 또한 던졌다.

사람들은 최동원이 단조로운 구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과 다르다. 

빠른 포심, 커브, 슬라이더 또한 명품이었다고 미국신문에서 전했다. 

또한 한국에 몇 명 없던 투심을 던지던 투수였다.

3. 최동원의 기록

1983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고, 이듬해인 1984년에는 프로 야구사에 길이 남을 대기록들을 세웠다. 

51경기에 출전해 14차례나 완투하며 27승(9선발승 6세이브 13패)과 223 탈삼진, 2점대 평균자책점으로 한국 프로 야구 최우수 선수상과 다승왕, 탈삼진왕을 차지했다.

특히 이 해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따내 팀의 창단 첫 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1패 포함, 1차전 완봉승 3차전 완투승 5차전 완투패 6차전 구원승 7차전 완투승)

최동원은 유일하게 역대 한국시리즈에서 한 선수가 4승을 모두 거둔 선수이다

선동열과 더불어 대한민국 프로야구 초창기 최고 투수 중의 한명으로 평가받는다.

선동열과의 맞대결에서는 1승 1무 1패를 기록했다.

1987년 시즌까지 10승 이상을 기록하며 200이닝 이상을 던지는 쾌투로 팀의 에이스임을 보여줬다.

 

1988년 말 선수협 파동으로 삼성 라이온즈 김시진을 포함한 3:4 트레이드로 삼성 라이온즈로 강제 이적했으며, 트레이드에 반발하여 1989년 후반에서야 롯데로 돌아왔다.

1990년 시즌을 마치고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1991년에는 미국으로 지도자 연수를 다녀온 경력이 있다.

 

롯데 자이언츠에 두명뿐인 영구결번 11번의 최동원

 

통산기록 : 248경기, 124 선발, 103 승리, 81 완투, 15 완봉, 26세이브, 1414.2이닝, 1019 삼진, 평균자책점 2.46

보기만 해도 웅장한 통산기록이다.

4. 최동원 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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